제목: 끝의 시대, 벙커에 갇힌 부유함 – 우리가 바로 지금 맞서야 할 신(新) 파시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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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재난 영화가 아닌 현실입니다. 기후 위기, 전염병, 지정학적 충돌, 그리고 AI의 폭주가 공존하는 이 시대에, 세계의 가장 강력한 이들이 선택한 대응 방식은? 전 세계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한 공공의 노력이 아닌, 그들만의 ‘아포칼립스 준비’입니다. 이들은 자신들만의 "벙커 국가", "디지털 방주"나 "자유의 도시(Freedom City)"를 건설하며, 다가올 혼란에서 벗어날 출구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어느 한 단어로 요약하자면, 바로 “종말적 파시즘 (End Times Fascism)”입니다.
지금부터 우리는 이 현상이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부자들의 ‘탈출 계획’ – 자유의 도시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프로스페라(Próspera)’라는 이름을 들어보셨나요? 이는 온두라스의 작은 섬에 건설된 하나의 고급 커뮤니티로, 일부 부유한 투자자들이 추진 중인 ‘기업 도시국가’를 상징합니다. 여기서 사는 이들은 일반적인 세금도 내지 않고, 국가법보다 우선되는 자체 규율을 따릅니다.
기업가 피터 틸(Peter Thiel)이나 발라지 스리니바산(Balaji Srinivasan) 같은 인물들은 'EXIT(탈출)'이라는 철학을 내세우며, "시민으로서 의무를 지는 대신, 돈으로 법과 질서를 구매할 수 있는 공간"을 꿈꾸고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만의 판타지 세계를 세우고 있는 것이죠.
이러한 구상은 결코 공상과학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2023년, 도널드 트럼프가 “연방 땅 위에 10개의 자유 도시(Freedom Cities)를 건설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운 뒤, 이 아이디어는 미국 권력의 한복판으로 빠르게 진입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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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벙커 국가’라는 이름의 새로운 체제
기업 도시만이 아닙니다. "벙커 국가(Bunker Nation)"라는 한층 넓은 개념이 극우 정치 세력들의 핵심 전략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자국 경계를 철저히 통제하고, ‘적’으로 규정된 이들을 대규모로 추방하거나 구금합니다. 미국의 ICE(이민국) 국장은 최근 “대규모 추방을 아마존 프라임처럼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원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말 그대로 인간을 물건처럼 취급하겠다는 선언이죠.
이러한 접근은 기이하게도 트럼프 지지층도 끌어들입니다. 이들은 실제 자유 도시에는 입주할 수는 없지만, 자신의 작은 벙커 — 예컨대, 재난에 대비한 비상식량 구비, 무기 구매 등 — 를 통해 종말론적 몰입감을 갖습니다. 스티브 배넌의 팟캐스트만 들어봐도, “대선 전쟁”, “적들이 우리 벽을 넘고 있다”는 이야기가 끝없이 흘러나오기 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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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 AI, 그리고 ‘디지털 라그나로크’
이 새로운 종말주의는 기술산업과도 깊이 얽혀 있습니다. 일론 머스크는 더 이상 지구를 살리자고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인류는 다행히도 다(多)행성 종족이 될 운명”이라며 화성 이주를 강조합니다. 그리고 그 ‘구원의 방주’에는 일부만 탈 수 있습니다. 나머지는?
“디지털 신”, “고등 AI”, “디지털 이식(Uploaded Consciousness)” … 과학적 진보라 포장된 이 담론은 실은 기술과 자본이 만들어낸 신흥 종교이며, 우리가 아는 지구적 연대와는 단절된 상상입니다. 우리가 서로를 돌보며 복원적으로 살아가는 대신, 이들은 피난처(Fortress), AI 로봇, 암호화폐만 믿는 세계를 꿈꿉니다.
최근 구글 전 임원 에릭 슈미트는 “AI는 인간보다 더 높은 존재가 되어야 한다”며, 이를 위해 앞으로 에너지 사용량을 3배 늘릴 것이라 밝혔습니다. 기후위기를 심화시킬 것을 알아도 말이죠. 이건 단순한 낭비가 아니라, "지구를 희생하면서 가상의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려는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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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왜 그레타 툰베르그를 두려워하는가?
종말주의 욕망의 반대편에는, ‘행성 잔류자’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르그죠. 피터 틸은 그녀를 “적그리스도”라고 불렀고, 제이디 밴스(부통령)는 “그녀가 미국 민주주의를 위협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들의 두려움은 명확합니다. 그레타와 같은 목소리는 이 ‘출구 전략’에 제동을 겁니다. 그녀는 사람들이 지구를 포기하지 않도록 설득하고, 우리의 ‘여기(Hereness)’에 다시 가치를 부여하려 합니다. 다시 말해, 이탈이 아닌 ‘머무름’의 정치 — 이것이 종말적 파시즘에게 가장 위협적인 메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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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떤 이야기로 대응할 것인가?
복잡하고 거대한 이 흐름에 우리는 어떻게 맞설 수 있을까요?
우선, 이 상황을 명확히 인식해야 합니다. 지금 마주한 적은 단지 다른 정치적 견해를 가진 사람이 아닙니다. 그들은 인간성과 지구, 그리고 미래세대를 포기한 사상적 좀비입니다. 이들은 “기후위기? 필요악.”, “AI의 폭주? 진보다.”라며 말은 멋지게 하지만, 사실상 세계를 사망 선고한 이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겐 새로운 이야기, 새로운 상상이 필요합니다.
애플의 드라마 [실로(Silo)]나 디즈니의 [파라다이스(Paradise)]처럼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에 빠져드는 대신, 우리는 ‘Doikayt(여기 있음)’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공유해야 합니다. 이는 과거 동유럽 유대인 사회주의자들이 고향 땅에서 안전함과 해방을 요구하며 외쳤던 말입니다. 어디든 우리의 뿌리를 내릴 '여기'를 인정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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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하며: 지구에 머무는 용기
언젠가 음악가 아노니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들은 여신의 가장 아름다운 아이디어에서 도망치고 있다.”
지구는 여신의 가장 아름다운 아이디어일지도 모릅니다. 인간이 아닌 존재들과 살아가는 다감한 공간. 지금 필요한 것은 그것에 대한 충실함입니다.
이제는 무모한 기술광기, 자본 우상화, 파시스트급 구분 짓기에 아니오라고 말해야 할 때입니다. 살아남기 위한 선택지가 ‘탈출’에서 ‘돌봄’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가 묻습니다:
💬 “당신의 심장은 아직 뛰고 있나요? 그리고 당신은 계속 살아가고 싶나요?”
그렇다면, 우리와 함께 이 길을 걸읍시다. 여기서. 서로를 지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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